야한 소설을 썼다는 이유로 징역형에 처했던 교수

2017년 October 26일   admin_pok 에디터

1977년 현대문학에 시로 등단한 시인이자 화가, 소설가인 마광수 씨.

그는 1983년부터 연세대학교의 국어국문학과 교수(당시 32세)로 재직하다가 1989년 장편소설 <권태>로 소설가로 첫 발을 내딛더니 즐거운 사라, 자궁 속으로, 귀족, 불안, 발랄한 라라, 사랑의 학교 등의 소설집과. 가자 장미여관으로, 야하디 얄라숑, 나는 찢어진 것을 보면 흥분한다 등의 시집, 나는 야한여자가 좋다 등의 수필집을 집필했다.

 

여기서 <자궁 속으로>는 <첫사랑>이란 제목의 개정판이 <불안>은 <페티시 오르가즘>이란 제목의 개정판이 나오기도 했는데, <즐거운 사라>는 출간 금지 판결 이후로 재심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영원히 출간될 일이 없는 전설의 소설이 됐다. (도서관이나 중고책으로는 볼 수 있다)

 

그가 쓴 소설이나 시집의 이름만 봐도 수위가 쌘데, 특히 그가 쓴<즐거운 사라>는 건전한 성의식을 심각하게 왜곡하는 음란물이란 이유로 논란이 됐고 검찰에 구속까지 됐다.

<즐거운 사라>의 내용을 보자면, 성에 대해 보수적인 한국 사회 전반에서, 프리섹스를 추구하는 자유로운 여대생 사라가 온갖 섹스를 즐기며 쾌락을 추구한다는 내용이다.

애초에 그는 “허례허식과 허세를 비판하며, 성에 대해 솔직해져야 한다”면서 “건전한 사회를 위해서는 성적인 욕망을 표현하고 해소할 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이었기에, 성을 표현하는 데에 누구보다 앞장섰던 사람이다.

 

마광수는 강의 중에 경찰에게 연행되었고, 검찰에선 강력하게 항의했으나 세간의 인식은 “연세대 교수씩이나 된다는 사라이 야한 소설을 써? 세상 말세다”라는 수준이었고 결국 그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이라는 유죄판결이 내려진다.

당시 판결문 일부.

특히 유력 보수일간지 등의 지면에는 마광수를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 지식인이 많았고, 한 교수는 “마광수 때문에 에이즈가 유행한다”는 등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출판계를 봐도 마광수의 소설보다 훨씬 야하고 수위가 높은 일본의 에로소설 여인 추억같은 소설도 문제 없이 출판되던 시기였고, 단행본으로 나오기 전 잡지에 연재됐을때도 누구도 클레임을 걸지 않았었다.

마광수 교수는 이 사건에 대해  “내가 교수였기 때문이고, 주인공 사라가 방탕한 쾌락 끝에 불행해지거나 정신 차리는 교훈, 도덕적 결말이 아니기 때문인 것 같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 사건이 커진 것은 실질적으로 마광수를 법적 처벌하라고 검찰에 명령한 당시 현승종 국무총리때문이었다.

결국 이로 인해 마광수 씨는 교수직에서 해임되었다. (이후 다시 복직됐으나 연금도 못 받았다고 한다)

훗날 마광수 씨는 <즐거운 사라>를 인터넷에 올렸으나 2007년 약식기소되기도 했고, 마광수 본인은 “10년 정도 지나면 어처구니 없던 해프닝으로 기억할 것”이라고 예언했고, 오늘날 이 사건은 문학계의 치욕적인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안타깝게 마광수 씨는 2017년 9월 5일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이러한 사건으로 우울증을 앓고 있었는데,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누가 불러주질 않아 그냥 집에서 지낸다”라며 “우울하다” “서운하다”라는 말을 반복했다고 한다.

그는 또 교수로써 제자를 많이 길러내고 싶어했지만, 해임됐다가 복직됐을때는 교수 사회 왕따로 교양 수업만 해야했고, 전과자 이력 때문에 연금도 제대로 받지 못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한편 마광수 씨가 세상을 떠나고 중고시장에 누군가 내놓은 즐거운 사라의 중고가가 25만원까지 오르기도 했다.

 

아래는 마광수 씨의 저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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