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스케일을 자랑했던 북한군 귀순 레전드 사건

2017년 November 22일   admin_pok 에디터

1983년 2월25일 서울에 공습경보를 알리는 방송이 귓가를때렸다.

서울,인천,경기가 폭격에 대상이라고 하자 직장에서 일하던 시민들은 일제히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러나 그는 서울을 폭격하러 온 것이 아닌, 귀순을 목적으로 전투기를 몰고 온 것이었다.

당시 평남기천비행장에서부터 연평도를 지나오기 전까지 같은 북한군소속 공군기 미그-19가 뒤에 따라붙자 그는 초고속 저공비행이란 아찔한 비행을 하며 구사일생으로 한국으로 귀순하였다.

80년대초 탈북자란 사람이 어색했던 때.

모든 사람들은 북한 군인을 모두 매정하고 목숨을 귀하게 여기지않고 얼굴도 흉측하게 생겼을거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의 외모는 건출하고 키도 180cm에 성격마저 털털해 남한에서는 귀순 환영 인파가 130만명에 이르기까지했다.

이때 이웅평 대위에 미그-19는 자유진영에는 정말 드문 기종이었고 남한에서는 군사학적 가치가 너무나도 높았다.

거기다 미그-19로 인해 이웅평 대위는 정말 이례적인 보상금을 받는다.

약 10억원을 받았는데, 그 때 당시 복권1등이 1억5천만원이었다는 것을 봤을때 이 보상금은 결코 적지 않은 돈이었다.

거기다 북한 공군에서의 계급을 인정받아 그는 귀순후 대한민국 소속 공군 소령으로 재입대를 하였다.

그의 귀순에 이유는 딱1가지.

북한 자체가 얼룩져있고 나도 한번 자유를 맛 보고 싶었다는 것.

그렇게 한국에서 그는 남한여성을만나 1남 1녀에 가정을 꾸렸다.

그는 이렇게 계속 좋은 일만 가득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탈북자란 곱지 않은 주위의 시선과 북한에 의한 보복공격이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밤새 독주를 하며 지내오다가 결국 간 기능 저하로 52세 별세하였다.

별세 당시 계급은 대령.

그에 시신은 공군의 권의에따라 국립묘지에 묻혔고 이웅평대위에 귀순사건은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엄청난 사건으로 남았다.